2023년 3월의 독립운동가
권애라
1919. 3.1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의 독립 만세운동 시위에 어윤희와 함께 주동자로 활동하다 피체되어 징역6월을 받았으며, 1920.7.9에는 서울 시내 여러교회에서 애국사상 고취를 위한 강연을 하여 종로경찰서에 구금된 사실이 있을 뿐아니라 1922.1월 노국에서 개최된 극동인민대표회의 한민족여성대표로 참석하는 등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1942년 4월에는 길림성 시가둔(吉林省 施家屯) 영신농장(永新農場)에서 아들 김봉년(金峰年)과 함께 일제 관동군 특무대에 붙잡혀 1년 이상 비밀감옥에서 고문취조를 받은 다음 장춘고등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광복으로 장춘형무소에서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심영식
경기도 개성(開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 졸업생이었다.
3월 3일 송도면에서 모교인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부자유한 시각장애의 몸을 무릅쓰고 군중대열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임명애
경기도 파주(坡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26일 김수덕(金守德)·김선명(金善明)·염규호(廉圭浩) 등과 와석면(瓦石面) 일대의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구세군(救世軍)으로서 3월 10일 교하리(交河里)에 있는 공립보통학교에서 이 학교 학생 1백여 명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고, 3월 26일에 7백여명의 시위군중이 모이자, 주재소로 행진하던 중, 연락을 받고 미리 대비하고 있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이 해 6월 3일 소위 보안법·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신관빈
1919년 2월 26일 기독교 남감리교 여성 전도사 어윤희(魚允姬)는 개성읍내 성경학원 기숙사에서 민족대표 33인의 조선독립선언서 2,000여 매를 배포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3월 1일 어윤희는 동료 여성 전도사 신관빈에게 이 사실을 알려 도움을 청하였다. 이에 신관빈과 어윤희는 오후 2시경 개성읍내 만월정(滿月町),북본정(北本町),동본정(東本町) 거리에서 주민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배포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신관빈은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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